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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명   :

「두 효자의 이야기」

 저   자   :

  조규연  글ㆍ그림

 판매가   :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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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원님의 효자법
이 이야기는 예로부터 진도에 살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조부모나 부모로부터 전해 들어온 이야기입니다.
아주 옛날 옥주(현재 진도) 고을에 효에 관심이 많은 원님이 부임해 오셨습니다. 그 원님은 평소에 “효자는 악인이 없다”는 속담을 늘 생각하며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원님으로 부임해 오면서, 고을 사람들에게 ‘효’를 실행하게 하여 예절 바르고 살기 좋은 고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궁리를 하던 중 문득 “그렇지! 나라에는 법이 있어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 듯이 효자법을 만들어 지키게 하면 좋겠다.” 며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원님은 우선 효자들이 어떻게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지, 효자들의 행실을 살펴보면서 효자법을 만들면 보다 쉽게 만들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원님은 각 마을에 소문이 난 효자가 있으면 추천하라는 방을 붙였습니다. 얼마 후 각 마을의 샌님들이 자기 마을의 효자들을 추천하려고 원님을 찾아왔습니다. 어떤 샌님은 소문난 효자와 함께 오기도 했습니다.
원님은 이들에게 “나는 이번에 새로 부임해 온 원님으로 고을에 많은 효자가 나오도록 하여 효자상도 주고 효자비도 세워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효자가 되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효자법을 만들어 지키게 하고 싶소이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오이다.”
모여든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참으로 좋은 생각이군, 지금까지 효자법이 없었으니 이렇게 효자가 적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원님의 지혜로움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리고 힘을 모아 원님께서 좋은 효자법을 만들 수 있도록 돕자며 자기가 추천한 효자들의 행실을 원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샌님들은 앞 다투어 자기 마을의 효자들을 자랑하였습니다. 부모에게 좋은 음식으로 봉양하고, 어떤 이는 부모를 업고 다니고, 어떤 이는 말에 태워 장에 가기도 하고, 기쁘게 해 드리려고 재롱을 부리는 효자도 있다고 자랑하며, 자기가 추천한 효자의 집에 가면 그들의 효행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원님은 여러 샌님들이 추천한 효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흐뭇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이 고을에 이렇게 효자가 많으니 효자법을 만들기가 쉽겠구나.’
하는 생각에 원님은 효자들의 효행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효자법을 만들어 임금님께도 올리면 얼마나 기뻐하 실까?’
라는 상상을 하며 원님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원님은 매일 여러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효자들의 행실을 보고 이야기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루 빨리 효자법을 만들어 나라에서 가장 효자가 많은 고을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찼습니다.
이렇게 원님이 이 마을 저 마을을 살펴보는 동안 효자법을 만든다는 소문이 온 고을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원님이 효자법을 만드신다니, 참 훌륭한 분인 것 같아!”
고을 사람들은 원님을 칭송하며 영접하였고, 효자상을 받아 보겠다고 너도 나도 효에 관심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효자법은 온 고을의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 중략 ~~
더구나 등에 업힌 아들은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습니다. 힘이 어찌나 센지 아들을 등에 업고는 마당에서 막 뛰기도 했습니다. 손자도 재미있다며 덩달아 웃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샌님은 죽을상을 지었습니다. 노모에게 일을 하게 하는 것은 가난에서 온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노모의 등에 업힌 아들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불효자의 행실이 틀림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님은 이런 불효자의 행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저런 불효자가 어떻게 효자라 소문이 날 수 있었는 지 모르겠구나?” 라고 한탄하며
옳지! 불효자법도 만들자.
‘그렇지 효자법도 좋지만 불효자법도 만들어 불효의 행실을 본으로 삼으면 저절로 효자 고을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며 원님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매우 현명한 사람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장차 이 나라에 없는 효자법과 불효자법을 만들어 임금님께 올리면, 크게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니 스스로 흐뭇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 효자법과 불효자법을 함께 배우면 사람들이 효에 대해 보다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이 가난한 불효자의 행실이 불효자법을 만드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이 법이 악한 행실을 하는 자와 선한 행실을 하는 자를 비교하여 가려낼 수 있는 법이니 누구나 쉽 게 이해할 수 있어, 지키게 하기가 좋지 않겠는가!’
~~ 중략 ~~
“글쎄요, 죄송하지만 저는 효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 며, 자식을 낳은 후에야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 헤아렸 을 뿐입니다. 제가 자식을 낳아 보니 제 자식이 그리 귀하거늘 어찌하여 저의 부모 또한 저를 귀하게 키우 지 아니 하셨겠습니까, 어려선 배 안에 저를 담고, 낳 은 후 저를 품어 주고, 똥오줌 더럽다 않고 가려 주고, 귀한 음식 아껴서 나를 주고, 따뜻한 곳 가려서 뉘어 주고, 아파 누워 앓을 때 밤을 지새우고, 부모의 온갖 소원 중에 자식 잘되기만을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각종 의 짐승이 그러하고 물고기가 그러하며, 또한 미물의 거미가 새끼들의 먹이가 되어 생의 마침을 보이거늘, 사람이 어찌하여 자식을 낳아 길러 본 후에도 부모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으니, 짐 승은 은공을 모르고 당연히 어미가 한 일 나도 할 것 이라며, 어미의 은공을 당연히 여겨 때가 되면 어미 곁 을 떠나 은혜를 갚지 않으니, 사람으로 이를 당연시한 다면 어찌 사람이 짐승이나 미물과 다름이 있겠소이 까.”
“또한 자식은 부모에게서 보고 배우는 것이 많으니, 저의 자식이 저의 행함을 보고 배울 터인즉, 자식 앞 에서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소?”
“단지 안타까운 것은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어린 손자 를 짝사랑하는 할머니시니, 달고 부드러운 음식을 어머 니께 드리면, 드렸던 그 귀한 음식이 손자 손에 들려 있고, 매서운 추운 날엔 따뜻한 아랫목이 손자 자리가 우선되나, 귀한 음식을 귀히 생각하지 않고 혼자서 먹 으며, 따뜻한 아랫목을 당연히 자기 자리인 양 차지하 는 어린 아들이 안타깝지만, 이 또한 귀한 음식 먹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이 먹는 것보다 더 기뻐하시고, 아 랫목에 자리잡은 꼬막, 조개 같은 손자의 작은 손을 만 지작거리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시는 할머니의 손 자 짝사랑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가난한 효자는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아직 효행을 한 적이 없고 모두 효행과 반대되 는 불효의 행실만 했을 뿐인데, 저에게 나라님의 효자 상이 와서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우겼으나, 신하라고 하는 분이 놓고 갔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는 놓았을 뿐 효자는 되지 않겠다고 이미 마음을 정하였소이다.”
“효자상이 무슨 가치가 있다고‥‥‥?”
하며 투덜거렸습니다.
이에 부자 효자가 더 궁금해 하는 것을 보고 가난한 효자가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효는 나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 분명하니, 나라님께서 내리신 상이라 할지라도 만약에 아들이 효 자상을 받겠다고 생각하고 효를 배워 부모에게 효자가 되려고 한다면,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 되는지라, 지난 장날 효자상을 팔아 어머니가 기르고 싶어 하시는 병 아리 몇 마리를 사 오고 쌀을 팔아 왔는데, 아직도 그 돈이 많이 남았소이다. 제 생각에는 앞으로 나라님께서 는 불효자상을 내려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곰곰 이 생각하면 궁궐의 나라님 생각이 틀릴 턱이 없고, 또 한 배우지 못하고 무식한 제 생각이 맞을 턱이 없으니, 제가 어찌 부자 효자님께 효에 대하여 가르칠 것이 있 겠소이까? 학문이 깊으신 부자 효자님께서 저희 집에 오셨으니, 마침 효에 대하여 배우고 싶던 참인데 자세 히 가르쳐 주십시오.”
~~ 중략 ~~
그 거룩한 마음
그렇다. 어머니의 마음이다.
부자 효자는 자신은 조금만 아파도 참지 못하고 신음하였는데 어머니는 열이 펄펄 끓도록 아플 때도 “괜찮다.”고 하며 오히려 걱정하는 아들을 염려하셨고, 이웃집에서 가져온 단 음식을 “쓰다” 하며 손자를 주셨으며, 아들이 때가 되어 돌아오지 않음에 근심하셨지만, 정작 아들인 나는 어머니의 걱정이 안중에도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과 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셨지만 아들인 나는 친구를 만나 더 긴 이야기를 했고, 부모 아닌 남에게는 그리도 많이 하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자식만을 위해 사시는 내 어머니에게는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자신이 보였다.
‘아! 내가 여태껏 짐승처럼 살았구나! 짐승‥‥.’
그랬다. 단 음식을 어머니는 쓰다 하시니 우리 입에 맛있는 것은 어머니에게는 맛이 없는 음식으로 알았고, 우리가 맛이 없는 것을 어머니는 달다고 하시니 어머니의 입맛은 그러시는 줄만 알아왔다. 적은 음식에 어머니는 배가 부르다 하셨으니, 어머니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으로 알았고, 추운 날 윗목에 누우며 춥지 않다고 할 때, 어머니는 추위를 모르시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항상 강하고, 또한 힘이 넘치시는 줄로 생각했었다.
어머니는 떨어진 누더기 옷을 입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자식의 옷은 새 옷으로 입히셨다. 비록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자식의 잘됨만을 바라시고, 아들이 효자로 소문이 나서 마을 사람들에게 칭송 받기를 기대하는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참으신 것을 늦게야 알게 되었다.
어려운 일은 어머니가 하시고, 쉬운 일은 아들이 하게 하고는 일을 잘했다고 칭찬하셨다. 손이 터지도록 거칠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자식에게는 쉬운 일이라 하셨고, 작은 돈 아껴 쓰는 그 마음에도 큰돈을 쓰도록 주신 어머니셨다.

마음이 괴롭고 울적할 때면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마 음을 달래시고, 홀로 계실 때 한숨지으며 슬퍼하셨으며, 사랑하던 남편을 여의고도 자식들 앞에서는 태연한 척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마음이 보였다.

아들은 진실을 말하는데, 어머니는 속마음을 감추셨고, 아들은 할 말을 다 하는데, 어머니는 할 말을 가슴에 묻으셨다. 걱정되는 일은 없는 듯 숨기고 가족 모르게 한숨지으신 거짓말쟁이, 그 분이 바로 어머니셨다. 아들이 생각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모두가 그 반대였다.

부자 효자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며,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일러 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부모의 귀중함을 이르기를, 부모에게는 자식이 아픈 것을 자신이 아픈 것보다 더 아파하는 사랑이 있나니, - 두 효자 이야기 중에서 -

~~ 중략 ~~
원님 어머니의 가정교육
또한 효자법을 만들어 효자 고을을 만들려고 했던 원님은 고을 샌님들에게 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효자는 악인이 없다.’는 말과 원님이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젊은 시절 원님은 마을에서 소문난 불효자로 저잣거리에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싸움 잘하고 술 잘 먹는 자로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막된놈으로 낙인찍혔으나, 무서운 한 분이 계셨으니 그분이 바로 칠순이 넘은 어머니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늦게 얻은 귀한 아들을 청색옷과 자색옷으로 입히고 바라는 것은 다 해주며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만 길렀는데, 커 가면서 나쁜 길로 들어서 친구를 노모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저잣거리의 악명이 높은 싸움꾼이 되어 버렸습니다. 늦게야 아들을 잘못 기른 것을 깨달은 노모는 지팡이로 아들을 때려 못된 버릇을 고치셨다고 합니다.
한번은 노모가 술판이 벌어져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아들에게 태연스럽게 가만히 다가가 눈을 감고는 지팡이로 아들의 등을 향하여 사정없이 후려치며
“세상에는 꼭 해야 할일이 있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있고, 또한 해서는 아니 될 일이 있음을 익히 알거늘, 어찌하여 사람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아 니하고 해서는 아니 될 일을 하고 있으니, 어미로서 매 를 때려 줌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며 때리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노모가 눈을 감고 때린

것은 어머니로서 자식을 때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들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아들이 일을 아니하였으므로 아들에게 이르기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하지 아니하면 당연히 밥을 주어서는 아니 되거늘, 어미로서 자식이 굶는 것 을 차마 볼 수는 없으니, 어미가 일을 한 어미의 몫으 로 너와 나누어 먹겠다.”
하며 자신의 밥그릇에서 밥을 덜어 아들과 나눠 먹으므로 배가 고픔을 알게 하고, 노동의 가치와 어머니의 사랑을 가르치셨으며, 도박꾼들과 어울려 밤을 지새우고 돌아온 아들에게 어미는 너를 위하여 밤을 새워 기다렸으니 밥맛이 사라졌으므로 밥을 이로 찍어 혀에 단맛을 느끼게 하야하는 것이 당연하나, 네 입과 혀는 잡배들이나 하는 더러운 욕지거리를 하는데 사용되었으니, 잘못을 물어 쓴 나물에 쓴 밥을 먹으라고 하며, 쓴맛이 나는 익모초로 따로 밥을 지어 주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나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친구의 의리를 부모의 효보다 더 중하게 여겨 심한 싸움질로 옥에 갇혀 큰 벌을 받게 되었는데, 노모가 원님을 찾아가 간절히 애원하며,
“내 자식은 원님도 무서워하지 아니하는 막된놈이 나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노모인 저이오니 내가 그를 벌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오른손이 자식의 잘못을 벌 하는데 게을렀으니, 내 오른손은 왼손에게 벌을 받아 야 한다.”
며 지팡이로 오른손을 내려치시고
“아들을 꾸짖기에 소홀하고 오직 밥만 축내고 단 음식 먹기만을 좋아하는 입은 굶겨야 한다.”
며 자식이 방면될 때까지 금식을 하셨으니, 옥살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자식은 금식으로 힘없이 누워 계시며 매질로 퉁퉁 부어오른 노모의 손을 보고 마음을 바꾸고,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과거에 급제했다는 소식을 들은 노모는 아들을 위해 큰 축하 잔치를 준비하였습니다. 아들이 집에 도착하는 날 노모는 여러 개의 큰 잔칫상을 마련하고, 그중 하나의 잔칫상에는 하얀 천을 펴 놓고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과거에 급제한 아들이 호위병들의 보호를 받으며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예를 갖추어 어머니에게 큰절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노모는 아들의 큰 절을 받기 전에 아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잔칫상에 펴진 하얀 천 위에 노모가 갖고 있던 손잡이가 굽지 않은 곧은 지팡이를 그 위에 공손히 올려놓았습니다. 축하객들은 잔칫상의 천 위에 지팡이를 공손히 올려놓는 것이 무척 궁금하였습니다.
잠시 후 노모는 아들에게 다가가 지팡이를 향하여 먼저 절을 하게 한 후 아들에게 일렀습니다.
“이 곧은 지팡이가 너를 아프게 때려 주어 너희 나쁜 행실을 바르게 고쳐 오늘의 광영이 있게 한 공이 있었 으니, 이 지팡이를 귀히 여겨 간직해야 하며 지팡이는 모양이 곧으니 지팡이의 모양을 닮아 바르게 살며, 지 팡이는 거동이 어려운 자에게 도움을 주니 어려움에 처한 자를 돕는 자가 되어야 하며, 장님을 인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주나니 법과 글을 모르는 자들의 지 팡이가 되어 훌륭한 원님이 되길 바란다고 가르치고 당연히 모든 면에 어미보다 나음이 있어 절을 먼저 받 게 하였느니라. 또한 나라에 귀한 자가 되었으니 이를 닮아 앞으로 깨끗한 정치를 하며, 너를 간섭해 준 지팡 이를 늘 귀히 여겨 간직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아들은 노모가 주셨던 허름한 막대기의 곧은 지팡이를 귀하게 고이 간직하며 늘 어머니의 지팡이를 보면서 어머니의 훈계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후 원님은 노모에게 효도를 다 하지 못하였으며, 어머니를 근심되게 했던 지난 일들이 한이 되어 어느 고을에 가든지 원님은 어머니의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효는 백행의 근본이니, 효자는 매사에 사람으로서 해야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일을 쉽게 구분하며,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친구의 잘못을 본받지 아니하며, 남을 섬기는 일을 겸하여 배우며, 어른을 존중하는 것을 겸하여 배우며, 자식을 바르게 기르는 것을 겸하여 배우며, 인내와 겸손을 겸하여 배우나니, 효자를 만나거든 그를 공손히 대하여 벗으로 삼아도 무방하나 불효를 하는 자를 만나거든 그는 마음이 악한 자니 그를 필히 멀리해야 되느니라 하고 가르쳤으니, 훗날 사람들은 원님을 ‘효자 원님’ 혹은 ‘지팡이 효자’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원님은 자식들에게도 훈계를 게을리 아니하셨지만 특히 서당 훈장님에게는 회초리를 만들어 드리며,
“서당 아이들은 초달에 매어 산다.”
하며 부모가 못하는 자식의 나쁜 습관을 회초리로 바르게 교육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하셨답니다. 여기서 초달에 매어 산다는 것은 서당에서 아이들은 훈장의 회초리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뜻으로, 벌이 엄해야 비로소 질서가 잡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훈장님께 자식을 엄하게 다스려 바르게 자라도록 훈육을 부탁하였다는 것입니다.
후회는 결코 앞을 서주지 않으니‥‥. 하시며,

3. 할머니의 강아지

할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항상 나를 강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나는 그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라서 초등학교 2학년 때쯤 어느 날

손녀 : (퉁명스럽게) “왜 우리 할머니는 나보고 맨날 강아지라고 할까?”
친구들 : (놀라는 소리와 표정으로)“뭐? 너보고 개 새끼라고 해?”
남자 친구 : “너보고 개 새끼라고 하신다고?”
손녀 : “그래∼애! 내가 학교에 갔다 오면, (할머니 목소리로) 아이고! 내 강아지 핵교 갔다 오냐? 하신다니까?”
친구 : “그럼 너희 아빠를 개라고 부르시니?”
손녀 : “아니? 애비야! 그러신다.”
친구 : “그럼 엄마보고는 뭐라고 하시니?”
손녀 : “아니야! 애미야!, 그러셔.”
수빈 : “그럼 개의 어미란 말일까?”
손녀 : “글쎄~에?”

하굣길에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던 중 마을 앞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손녀 : “할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
할머니 : “엇∼따, 내 강아지 핵교 갔다 오냐?”
손녀 :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

집에 돌아온 손녀는 가방을 마루에 놓고 할머니를 기다
렸다. 손자의 토라진 표정에 근심이 되어 들어오는 할머니께

손녀 :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할머니, 왜 나보고 맨날 개 새끼라고 해?”
할머니: “뭐? 누가! 내 강아지 보고 개 새끼라고 해!”
손녀 : “할머니가 그러시잖아! 또 강아지라고······.”

(한숨을 내쉬며,) “어린 호랑이는 호랑이 새끼이고,
어린 고양이는 고양이 새끼이고, 어린 개는 강아지잖아.
그러니까 할머니∼이, 나보고 강아지라고 하지 마∼!”
할머니 : “그래, 그래, 알았다. 내 강아지야!”
손녀: “(울상을 지으며) 할머니∼! 망아지는 말 새끼, 송 아지는 소 새끼, 병아리는 닭 새끼, 강아지는 개 새 끼, 개 새끼가 강아지잖아! 할머니는 강아지가 뭔지 도 몰라? 강아지~이?”
할머니 : “그래?”
손녀 : (설명하는 투로) “그러니까 친구들이 나보고 강아 지야∼, 바둑이야∼라고 놀린단 말이야!”
할머니 : “바둑이~?”
손녀 : “할머니는 바둑이 몰라? 개 말이야, 개”
할머니 : “너보고 바둑이라고 한 개자식들이 어디 있어, 혼 좀 내놔야겠다.”
손자 : “할머니, 그럼 친구들이 더 놀린단 말이야∼그러 니까, 할머니가 나보고 강아지라고 하지만 않으시 면 돼!”
할머니 : “알았다, 내 강∼”
손녀 : “그리고 할머니∼이, 개대기는 고양이이고, 맴생이 는 염소, 시앙치는 송아지, 핵교는 학교라고 해야 돼.”
할머니 : “그런디냐?”

할머니는 꼬마 손자에게 미안하셨는지 늘 조심하면서도
“아이고 내 강∼”에서 마치기도 하셨고 남자 친구들은 나를 강아지야∼, 바둑이야∼라고 놀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리고 입학하기 전에 할머니는 저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며 동물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는데, 강아지를 갱아지, 염소는 맴생이, 토끼를 ‘택깽이,’ 고양이는 ‘개대기,’ 송아지는 ‘시앙치’, 병아리는 ‘삥아리’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저는 1학년 때 선생님과 동물 이름 알아맞히기 공부를 할 때 송아지를 ‘시앙치’라고 했고 고양이를 ‘개대기’라고 해서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친구들은 나를 보면 갱아지, 바둑이, 맴생이, 택깽이라고 놀렸습니다.
그 후부터 나는 할머니께 동물의 바른 이름을 가르쳐 드리며 할머니와 더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아버지와 저에게 한글을 배우셨는데, 아빠보다는 저에게 글을 배우는 것을 더 즐거워하셨고 또한 성경을 천천히 읽으실 수 있었습니다.
고학년이 되어서야 운동과 공부를 비교적 잘 했던 나는 친구들의 놀림을 이겨낼 수 있었고 친구들도 놀리지 않았습니다. 뭔가 잘하여 상장을 받아 할머니에게 가서 자랑을 하는 때가 많았는데, 할머니는 애써
“내 손자 잘 했다.”
고 하며,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친구들의 놀림이 사라지면서 할머니가 다정하게 불러 주시던 강아지라는 부름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가을 무렵에 할머니는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노환으로 고생하시면서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 손을 꼬옥 잡고는
“아이고! 내 강아지 핵교 갔다 오냐?”
며 학교에서 돌아오는 저를 반겨 주셨습니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할머니는 갱아지가 아니라 ‘내강아지’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갱아지는 어린 개이고 “내강아지”는 할머니의 손자 애칭이셨습니다. 할머니는 내강아지와 개 새끼의 다른 점을 설명해 주지도 못하시고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던 할머니의 강아지를 두고서‥‥.
“할머니, 보고 싶어요!”

할머니는 나를 보고 강아지라 하시니
할머니의 강아지는 무엇이 강아진고
정말로 할머니는 강아지도 모르실까?

어린 닭은 병아리 병아리는 어린 닭
어린 개는 강아지 강아지는 어린 개
할머닌 날보고 왜, 강아지라 하실까?

세상에 손자보다 더 귀한 것 있겠느냐
귀엽고 사랑스런 것 강아지뿐 더 있더냐!
손자야 그 외 있으면 내게 일러 주거라.

할머니의 강아지가 손자 사랑 이름이라
할머니의 사랑이 손자 외 또 있으랴
강아지 내강아지 할머니의 참 사랑말

할머니는 염소를 맴생이라 이르시고
고양이 부르기를 개대기라 이르시니
할머니의 손자 이름은 강아지가 맞는 건가?

할머니! 불러보고 보고도 싶은데
계시지 아니하니 더욱 보고 싶은 맘
계실 제 할머니 가고 싶은 그 시절.